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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의 중화문과 최대 공자사당 부자묘

60대 젊은 노인의 중국 배낭 여행기 (1)_ 난징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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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복
기사입력 2018-02-02

배낭메고 중국으로 출발

이번 중국여행은 강소성 성도 난징(南京)과 호북성 성도 우한(武漢) 그리고 시옌(十堰)시 무당산(武當山)을 중심으로 하여 1월 17일부터 24일까지 7박8일간의 여행을 준비했다. 1년 반전 하남성(정주) 감숙성(난주) 섬서성(서안) 성도를 중심으로 한 중국 배낭 여행때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17일 오전 9시 산본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12시 30분 난징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기가 예약되어 있었다. 10시 30분경 공항에서 이은호 사장(대림부동산)을 만나 비행기표를 자동으로 티케팅하고, 핸드폰 로밍을 7일간 했다. 배낭을 부치지 않고 그대로 기내로 가지고 갈 생각이었기에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문제는 기내에 들어와서 발생했다. 여행을 할 때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기 마련이며 그것을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따라 여행의 묘미가 달라진다. 난징행 비행기가 현지 공항의 사정으로 40분 늦게 출발했다. 중국 난징 공항의 도착 역시 40분 늦은 오후 3시(현지시간) 경에나 도착했다.

 

난징은 10개 나라가 도읍으로 삼았던 곳으로 베이징(北京), 시안(西安), 뤄양(洛陽)과 함께 '4대 고도(古都)’로 꼽힌다. 난징이 역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시기는 1368년 주원장(朱元璋)이 명나라를 세우고 도읍으로 삼았던 때이다. 그는 거대한 궁궐과 둘레 35Km에 달하는 높은 성벽을 축조했다. 1402년 3대 황제에 오른 영락제가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후에도 난징은 강남 운하의 요충지이자 남부의 중심이었다. 뒤이어 19세기 중반 농민반란군이 세운 태평천국과 1912년 세워진 중화민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따라서 난징의 역사와 문화 유적은 명대 초기의 문화와 아편전쟁이후 중국 근대와 관계된 문화 그리고 중화민국의 역사가 중심이 된다.

 

난징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중에 제일 먼저 목표로 했던 ‘난징 대학살 기념관(南京大屠殺記念館: 오후 4시 30분에 문을 닫음)’관람을 시간상의 문제로 포기하고, 난징성 성문인 중화문(中華門)을 먼저 보기로 했다.

 

▲  난징 성의 정문 중화문   ©군포시민신문

 

난징 성의 정문...중화문(中華門)

중화문은 명대에 만들어진 난징 성의 정문(남문)이다. 중화문의 처음 명칭은 취보문(聚寶門)이었으나 1931년 중화문으로 변경됐다. 현재 남아 있는 13개의 명대 성문 중 가장 크고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4중의 성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군사적인 고려 때문이다. 고대 중국의 도시들은 모두 성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승패는 성벽과 성문을 얼마나 잘 방어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중화문은 4중의 성문을 설치해 방어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설사 적군이 성문을 파괴하고 내부로 진입한다 해도, 천근갑(千斤閘)이라는 철문이 내려와 퇴로를 봉쇄한다. 독안에 든 쥐가 되어버린 적군을 기다리는 것은 성문 옆 동굴에 숨어 있던 3,000명의 기습부대이다. 27곳에 분산 배치된 기습부대는 5배의 적군도 방어해낼 수 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곳이다.

 

▲  난공불락의 중화문   ©군포시민신문

 

이은호 사장과 함께 중화문 입장료를 노인표(반값) 50원(중국 환율 1: 170)을 치르고 입장했다. 4중의 성문으로 이루어진 중화문을 보면서,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를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난징을 공격·함락할 때 환관과의 내통이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장은 중화문 성벽에서 드론을 띄워 여유롭게 주변의 전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중화문을 나와 택시를 타고 부자묘(夫子廟)에서 숙소를 정했다. 숙소는 메이샹 여관(媚香賓館)으로 원래 명칭은 이향군(李香君) 고택 안에서 진회하(秦淮河)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미향루(媚香樓)’이다. 이것을 3성급 여관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  만세사표 공자  ©군포시민신문

 

난징에서 가장 큰 공자 사당...부자묘(夫子廟)

부자묘는 난징 시에서 가장 큰 공자 사당으로 공자에 대한 신격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034년 건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청대에 재건한 것으로 영성문(欞星門)을 지나면 부자묘의 실질적 입구인 대성문(大成門)에 들어선다. 대성문의 양쪽 벽면에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과 예(禮)가 크게 새겨져 있다. 사당의 핵심인 대성전(大成殿) 앞에 대형 공자상이 서 있고, 그 앞에 8명의 애제자가 양쪽으로 나뉘어 도열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일생에서 중요한 사건을 옥으로 새겨 놓았다.

 

▲  부자묘 야간 전경   ©군포시민신문

 

부자묘 주변은 난징에서 가장 운치있는 거리로 모든 건물이 강남의 전통가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자묘 앞을 흐르는 작은 하천 진회하는 물 많고 경지 좋은 강남의 정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밤에는 야시장이 서는데, 관광과 식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북적이는 부자묘 야시장에서 만두 튀김 볶음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부자묘를 야간에 보는 것도 별미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국 관광객을 만날 수 있기를 은근히 바랬지만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여관으로 돌아와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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