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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 이야기] 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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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섭 K-GeoFood Academy 소장
기사입력 2020-09-01

  “뽀빠이, 도와줘요~!”

 

  우리나라에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60~70년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애니메이션은 단연 <뽀빠이>였다. 그의 여자 친구 올리브가 이렇게 외칠 때마다 시금치를 먹고 달려가 악당들을 물리치는 힘센돌이 사나이 뽀빠이. 1929년 미국에서 발간된 만화 <골무극장>에서 조연으로 처음 등장했던 뽀빠이는 이후 애니메이션 <베티 붑의 대나무 섬>에 등장하며 인기를 얻었다. 그 후 1933년 <뱃사람 뽀빠이>라는 독립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통해 주인공으로 거듭났고 세계 각국의 TV를 통해 동심을 사로잡았다.

 

  이 만화영화를 보았던 우리 세대들은 하나같이 ‘시금치=정력’을 떠올린다. 시금치 통조림을 먹기만 하면 힘이 불끈 솟는 뽀빠이의 모습이 연상되어서이다. 이는 시금치에 철분이 많다고 알려진 이유인데, 재미난 에피소드가 전해온다. 1870년 독일의 과학자 울프(E. von Wolf)가 기고한 출판자료에서 여비서가 시금치 100g당 철분 3.6mg을 소수점을 빠트린 채 무려 36mg으로 잘못 타이핑 치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는데, 1930년대에 와서야 정정되기까지 잘못된 이 수치를 미국의 시금치 통조림 회사가 발 빠르게 상업적으로 우려먹은 게 <뽀빠이> 시금치 신화의 시초가 되었다. 참고로 시금치의 철분 함량은 배추나 브로콜리, 렌틸콩이나 말린 콩에도 못 미친다. 

 

  이런 영향 탓인지 미국인들은 지금도 시금치를 베스트 푸드의 반열에 올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2015년 초 미국 질병관리본부(CDC)가 발표한 ‘채소 베스트 푸드 5’에 시금치를 포함 시켰으며, 미국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포스트』도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중 하나로 시금치와 레몬을 꼽았다. 시금치, 케일, 근대 등 식물에 있는 철분은 비타민C와 함께 먹으면 더 흡수가 잘 되고, 레몬주스나 약간의 딸기, 피망을 더하면 식물성 철분이 생선이나 고기에 있는 형태로 변하여 인체의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시금치는 명아주과에 속하는 1,2년생 풀이다. 아르메니아로부터 이란에 걸친 지역이 원산지인데 페르시아, 아라비아,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를 거쳐 유럽으로 퍼졌고 중국에는 3세기경 이란으로부터 전해졌으며, 우리나라에는 1577년(선조 10)에 최세진에 의해서 편찬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 중국에서 전래 된 것으로 여겨진다. 시금치는 내한성이 강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경기·경남·전남 등지가 주산지이다. 

 

  시금치 이름의 어원은 이우철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금치의 붉은 뿌리를 상징하여 적근(赤根)/적근채(赤根菜)를 어원으로 하는 중국발음(치근치)을 본떠 시근채>시근취>시금치로 변화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자명은 원산지 페르시아에서 전래 된 채소라는 뜻으로 ‘파릉채(菠蔆菜)’ 또는 ‘파채(菠菜)’라 하고 빨간색 뿌리채소라는 뜻으로 ‘홍근채(紅根菜)’라고도 한다. 학명은 Spinacia oleracea L.이다. 속명 ‘스피나치아’는 라틴어에서 ‘종자에 가시(spina)가 있다’는 뜻에서 비롯되었으며, 종속명 ‘올레라시아’에는 ‘식용으로 쓰이는 채소’라는 뜻이 담겨있다.

 

  시금치의 재배 형태는 봄 가꾸기·여름 가꾸기·가을 가꾸기의 세 가지가 있다. 봄 가꾸기는 4~5월에 씨를 뿌려 5~6월에 수확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노벨이 있다. 여름 가꾸기는 6~8월에 씨를 뿌려 8~10월에 수확하는 형태로 재래종이 재배되나 온도가 25℃ 이상 되면 자라지 않으므로 고랭지에서만 재배된다. 가을 가꾸기는 9~10월에 씨를 뿌려 10~11월에 수확하는 것으로 주로 우성 시금치가 재배된다. 파종은 줄뿌림을 주로 하며 시비량은 10a당 질소 20kg, 칼륨 15kg, 인산 12kg 정도이다. 수확은 재배 시기에 따라 다르나 파종 뒤 50~60일에 실시한다.

 

  시금치는 대표적인 장일(長日) 식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성장이 빨라진다. 토양 산도는 pH 6.6~7.5가 알맞고 산성토양에서는 생육 장해가 심하다. 시금치는 종자의 형태에 따라 각이 있는 유각종과 각이 없는 무각종으로 구분된다. 유각종은 종자에 2~3개의 돌기가 있고 잎은 가늘고 길며 내한성이 강하여 가을 재배에 알맞다. 무각종은 유각종의 돌연변이로 생겨 난 것으로서 잎이 넓고 옆면은 오글거려 파도 형상을 나타내며 주로 봄 재배에 이용된다. 또 이 두 종의 잡종도 재배된다.

 

  ‘포항초’로 잘 알려진 경북의 포항 시금치가 2014년 12월 시금치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지리적표시 등록을 마쳤다. 포항 시금치는 이 지역의 토착 재래종으로 1950년대에 이미 수도권 지역으로 대량 출하되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쌓게 되었다. 포항은 겨울철에도 기온이 온난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시금치 재배에 적격이다. 이곳의 생산 농가는 544곳, 재배면적은 356㏊, 생산량 4,915톤 수준이지만 연 소득액은 133억 원으로 전국 시금치 소득액의 30% 수준이다. 연중 불어오는 해풍의 영향으로 뿌리 부분의 적색과 잎 부분의 녹색이 진하고 당도와 비타민C는 물론 수분과 식이섬유 함량이 높아서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포항초를 찾는 이들이 꾸준하기 때문이다. 

 

  영양가가 높은 시금치에는 유기산으로 수산(蓚酸, oxalic acid), 사과산, 구연산, 아이오딘(옥소) 및 비타민C가 채소 중에서 제일 많이 들어있다. 또 비타민B1, 비타민B2, 나이아신, 엽산, 사포닌 외에 당질, 단백질, 지방, 섬유질, 칼슘, 철 등의 영양소도 골고루 들어 있다. 성분을 살펴보면 단백질 2.6%, 지방 0.7%, 탄수화물 4.2%, 섬유질 0.7%이며, 철분이 100g에 3.0~4.2mg, 비타민A가 5,000~8,000I.U., 비타민C가 30~60mg 들어있다. 시금치는 채취하여 하루만 지나도 절반 이상의 영양분이 감소 되는 약점이 있다. 시금치 성분 중 비타민C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시금치가 약용(藥用)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713년에 발간된 『식료본초(食療本草)』에서다. “시금치는 오장에 이롭고 술로 인한 독을 풀어준다”라 하였다. 한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시금치는 혈맥을 통하게 하고 속이 막힌 것을 열어 준다”고 기술하고 있다.

 

  1927년에 발간된 『미국의학(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지에 따르면, 시금치는 '채소의 왕'으로 불리며 빈혈, 소화불량, 쇠약, 정력 감퇴, 심장 장애, 신장 장애 등의 치료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시금치는 카로티노이드를 많이 함유한 식품 중의 하나로서 폐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시금치에는 위장을 활발히 하고 정화하는 약리 작용이 있으므로 위장장애, 변비, 냉증, 거친 피부 등에 유효하다. 뿌리에는 조혈 성분인 구리, 망간,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므로 생즙을 낼 때에는 뿌리까지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생즙은 치아의 건강에도 좋다.

 

  시금치는 다양한 비타민을 골고루 함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혈 강장 효과가 있는 식품으로서 성장기 어린이는 물론 임산부에게 좋은 알칼리성 식품이다. 아울러 시금치는 요산(尿酸)을 분리하여 배설시키므로 류머티즘이나 통풍에 유효한 식품이다. 또 시금치는 식물성 섬유질이 풍부하고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주는 작용이 있어 변비에 효과적이다. 장(腸)의 열을 내려주는 약효도 있어 치질에 먹으면 좋다. 철, 엽산 등은 빈혈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 최근 국립보건연구원과 고려대 안산병원은 노인 1,215명을 조사한 결과 혈중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높으면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체내 부산물인 호모시스테인 농도를 낮추려면 엽산과 비타민B12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은데 엽산은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등에 많고, 비타민B12는 굴과 소의 간 등에 많다.

 

  한편 시금치에는 수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오랜 기간 많이 먹으면 신장이나 방광에 결석(結石)이 생길 우려가 있다. 수산이 체내의 칼슘과 결합하면서 수산칼슘으로 변화하여 신장과 요도 등에 결석을 가져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에 500g 이상을 먹지 않으면 상관없으므로 평소 먹는 분량으로는 별걱정을 안 해도 된다. 가정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식이요법으로는 시금치와 깻잎을 살짝 데쳐 먹으면 빈혈에 좋고, 시금칫국을 먹으면 주독(酒毒)이 풀린다.

 

  일찍이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아버지가 약주를 드신 다음 날이면 으레 시금칫국을 끓여주셨다. 남해가 고향인 김법수 시인도 <시금치>라는 시를 통해 모정(母情)을 되살린다. 그의 시를 소개하며 시금치 이야기를 끝맺고자 한다.

 

  냉장고에 봉지째 넣어 둔, 어머니가 가져온 

  시금치가 시들었다. TV에서 본 대로 

  식초 몇 방울 떨어뜨려 잎을 살려낸다

  겨우내 시금치 묶어서 만든, 재수생 손자 대학등록금을 

  몸에 지니고 와, 시금치와 함께 내어놓는 

  오른손 엄지가 닭발처럼 휘었다.

  뼈가 부러져 닭발이 되어 버린 어머니 

  엄지손가락을 나는 알지 못했다

  슬며시 시선을 돌린 창밖에는 한여름 단단하던,

  폭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낙엽송이

  팽팽하게 붉어진 얼굴로 아슬아슬 흔들리고 있다

  해풍에서 자라 단맛이 좋은 어머니의 시금치, 

  나물로 무치지 못하고 나는 그저

  시든 이파리만 자꾸 살려내고 있다 

 

▲ 신완섭 K-GeoFood Academy 소장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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