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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칼럼] 코로나 팬데믹 시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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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성대 초빙교수, 공화21 공동대표)
기사입력 2020-09-12

 한면희(공화21 공동대표) 


1. 코로나 팬데믹과 국가별로 달리 하는 명암

중국 우한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언론을 통해 세계 시민에게 알려진 때는 2020년 새해 벽두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가 사람과 사람 간에 전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우한 사람들은 중국 전역을 다녔고 또한 1월 말 춘절(우리의 설)을 맞이하여 중국인들이 여행을 떠나 세계 곳곳에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물론 중국인 자신들도 감염자로서 병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본래 전염병은 청결하지 못한 곳이라면 세계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발생지와 초기 감염자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사회 체제와 문화, 방역 방식이 어떤 성격의 것이냐에 따라 전염의 규모와 범위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 제도와 문화를 규정짓는 정치철학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들의 춘절 여행 직후인 2월6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발표 기준으로 전 세계 감염자는 2만8273명인데, 중국이 압도적 다수여서 2만8017명이고, 2위 일본이 45명, 5위 한국이 23명 수준이었다. 당시 서유럽의 경우 가장 많은 호주가 14명, 독일과 미국이 12명, 프랑스 6명, 이탈리아와 영국이 2명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감염자는 희비의 곡선을 그리면서 폭발적으로 늘었고 팬데믹도 선언되었다. 글로벌통계웹 월드오미터의 9월9일 기준으로 전 세계 확진자 수는 277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9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진자 순위별 분포로는 미국 650만, 인도 436만, 브라질 416만, 러시아 103만 명을 상회하였고, 서유럽의 스페인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경우 51만에서 25만 명 사이를 나타내고 있다. 사망자로는 1위 미국이 19만, 2위 브라질이 12만, 3위 인도가 7만, 그리고 영국이 5위로 4만 명 이상의 수준이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은 2월 초 확진자가 압도적이었던 중국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이냐는 데 있다. 중국은 9월8일에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코로나19 방역 표창대회를 열어 자축하면서 사실상 종식을 국내외에 천명했다. 물론 20일 이상 확진자가 0명이라는 점도 내세웠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9월7일 기준으로 지난 20일 동안 중국발 한국행 승객 5명이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중국은 무증상자를 확진자 통계에 넣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무증상자로 인한 전파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중국 발표를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2. 코로나 팬데믹과 불간섭 자유, 민주주의의 한계

어찌 되었든 중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가 국력 신장은 물론 코로나19 방역에서도 성공적인 것처럼 체제의 우월성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가 정말로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코로나 방역에 관한 한 위력적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초기에 1천만 명 인구의 우한시 전체를 봉쇄하고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며 사람의 이동도 철저히 제한하는 권위주의적 조치가 전염병 차단에 매우 효과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권리 등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체제는 중요한 것 하나를 얻으면서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배척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예컨대 2019년 이후 홍콩 시민들이 중국식의 통제에 대해 자유를 위한 항거를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중국과 매우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서구를 살펴보자. 미국과 프랑스 등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와중에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저택에 모여 대규모 파티를 열고, 밀폐된 술집서 함께 섞여 춤을 추며, 광장 카페서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떠들며 대화를 지속하는 광경을 빈번하게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미국 미시건주에서는 무장한 시위대가 코로나 비상사태 해제를 요구하며 주의회 의사당 건물을 점거하는 농성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반대하는 수천 명 규모의 시위를, 그리고 호주 멜버른에서는 빅토리아 주의회 의사당 앞에 3백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코로나는 거짓말,’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자!’는 피켓 시위를 전개하였다. 비슷한 장면이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 등에서도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부의 정책을 간섭받지 않을 자유에 대한 권리 침해라 보고 있고, 마스크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각 개인이 알아서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되어 익명의 이웃들이 감염에 따른 치료 부작용을 겪거나 그 일부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데도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21세기 민주주의 선진국인 서구의 문화와 제도에 무엇인가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에 권위주의적 통제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수시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 탄압을 자행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서유럽 국가에서는 일상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마음껏 향유되고 있지만 위험시 공동체 의식의 결여로 이웃이 수난을 당하더라도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는 서유럽, 특히 미국이 겪을 제도상의 위험을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이 일찍이 경고하였다고 본다. 그는 1996년에 출간한 <민주주의의 불만Democracy’s Discontent>이란 저서에서 자유주의가 지배적 사조로 등장하는 가운데 작동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공동체성과 관련하여 지독히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는 홉스에게서 볼 수 있듯이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핵심으로 드러내고, 밀과 칸트, 존 롤스에게서 살필 수 있듯이 독립적 자아가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특징으로 내세운다. 공동체의 이익이나 선에 관한 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는 개개인이 취하는 것들의 단순 합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정부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볼 뿐이다. 이런 제도상의 문화로 인해 2008년에는 각자가 제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과정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파티와 춤, 술을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와 권리를 내세움으로써 익명의 이웃을 병마와 시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3. 코로나 팬데믹 시대 최적의 정치사조

샌델이 민주주의 자체를 비판하거나 인간 개인이 누릴 자유를 거부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무연고적 자아의 선택적 자유와 민주적 정부의 중립적 선 관념으로 인해 공동선과 자치, 시민의 미덕과 같이 공동체의 핵심 가치가 질식당하게 됨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 역시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 전통의 좌우 이데올로기 모두 한계 수명에 봉착했기 때문에 미국 건국 초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바르게 반영한 정치사조로 공화주의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 공화정의 로마는 법 이외에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자유를 내세우면서 이를 위해 시민의 미덕과 공익을 중시함으로써 제국으로 발돋움하였다. 토마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 등 미국 국부들은 건국할 때 공화주의를 통해 시민이 자유를 누리되 미덕의 함양을 통해 자치와 공동선을 도모하는 사회제도를 구현하고자 시도했다. 이런 배경서 공화당의 링컨이 등장하여 공동선을 위해 남북 분단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노예제를 철폐하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공화주의와 손을 잡아 시민의 자유와 더불어 공동선을 함께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자유 시장이 초래하는 문제는 물론 바이러스가 초래하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은 다소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K-방역이라 할 정도로 코로나 팬데믹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확산 초기에 신천지 교단 본부가 있던 대구를 강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도 사태를 진정시킨 것이 그 전형이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한편으로 코로나19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성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시민의 자유와 경제활동을 가능한 한 유지코자 노력했다. 시민도 전염병 창궐이라는 사회 전체의 위험을 인식하여 각자의 자유 행사를 다소 절제하는 가운데 공익적인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마스크 쓰기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물론 어느 사회나 있는 일부 몰상식의 막무가내 유형의 행태를 슬기롭게 위축시키고 있음도 다행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나름 코로나 팬데믹을 잘 이겨내고 있다. 산업화는 물론 피땀으로 민주주의까지 성취한 나라로서 개인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면서 위험에 봉착했을 때는 절제와 이웃 배려도 행함으로써 코로나 팬데믹 극복이라는 목전의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한국인의 공익적 행보는 과거 권위주의적 질서에 순응하는 버릇에서 비롯된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의 정신과 두레의 연대 문화가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알고 보면 공화주의의 일부 요소가 우리 문화 안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코로나 사태에서만이 아니라 제반 국사에 있어서도 공화주의에 유념하게 될 때 국제정치에서도 본이 되는 국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사회의 현대인은 무절제하게 자신과 제 집단만을 위해 풍요와 편리를 배타적으로 도모하는 과정에서 숱한 위험 요인을 곳곳에 뿌려놓았고, 그 보응으로 위험이라는 재앙을 수차 겪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테러리즘의 위험, 기후위기, 슈퍼 바이러스의 창궐 등 앞으로도 유형을 달리 하는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구조적 위험은 무연고적 자아의 불간섭 자유와 정부의 중립적 선 관념의 정책으로 이겨낼 수 없다. 오히려 공동의 위험은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와 배려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 21세기에는 개인의 자유가 피어나는 가운데 형제애를 통해 연대를 하면서 더불어 좋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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