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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 이야기] 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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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섭 K-GeoFood Academy 소장
기사입력 2020-09-15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2014년 5월 7일 자로 진도 울금(鬱金)이 지리적표시 농산품으로 등록되었다. 축하해주어야 마땅하나 한 달 전쯤 그곳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수백 명의 젊은 학생들 생각에 숙연한 마음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본인 아라이만이 작곡하고 임형주가 번안하여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A Thousand Winds)>로 우선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한다. 

 

  생강과에 속하는 울금은 열대 아시아가 원산인 여러해살이 초본식물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중국 남부, 오키나와 등지의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자생하며 우리나라 중남부 이남 지역에서도 재배된다. 원래 다년생 식물이지만 10℃ 이하에서 냉해를 입을 수 있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4월 하순경에 심어 12월 초 서리가 한두 번 내린 후 수확하는 1년생 재배종으로 간주 된다. 

 

  잎은 기부(基部; 밑 부분)에서 나오고 기부의 잎자루 길이는 5cm 정도로 짧으며, 잎은 끝이 뾰족한 타원형으로 4~8개의 다발모양을 이루면서 높이 50~150cm까지 자란다. 잎의 모양은 칸나와 비슷하게 생겼고 잎맥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초가을에 꽃줄기가 20cm 정도 자라서 끝에 꽃송이가 달리며 비늘 모양으로 겹쳐진 꽃턱잎 안에 흰색 또는 연노란색 꽃을 피운다. 땅속에 지름 3~4cm의 굵은 뿌리줄기가 맺히며 중심 뿌리줄기는 공 모양에 가깝다. 갈라져 나온 뿌리줄기는 원기둥 모양인데 바깥쪽은 갈색이고 속은 귤색으로서 모양은 생강과 흡사하다. 

 

  기원전 6백 년 경의 『앗시리아 식물지』에 이미 울금을 착색성 물질로 이용하였다 하였고 성서 시대에는 향수나 향신료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마르코 폴로는 울금이 중국 푸젠성(福建省)에 많다 하였고, 명나라 때의 『통아(通雅)』에는 울금으로 황색을 염색한다 하였으며, 『위지(魏志)』에도 왜인이 울금을 헌납하였다 할 정도로 중국에서는 염료로서의 쓰임새가 높았다. 미얀마에서는 지금도 승려복을 울금으로 염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규합총서(閨閤叢書)』, 『상방정례(尙房定例)』등에 울금 염색법이 소개되어 있다. 

 

  울금은 술과 함께 섞었을 때 누런 금같이 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학명 Curcuma는 아랍어의 kurkum(황금)에서 유래하고 뿌리줄기가 오렌지빛이 감도는 노란색을 띠다 보니 중세에는 ‘인도의 사프란(Indian Saffron)’으로 불렸다. 참고로 사프란은 붓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황금색의 끝이 뾰족한 암술머리를 말려 음식의 맛이나 색을 내거나 염료로도 사용하지만 비싼 게 흠이다. 울금의 뿌리줄기는 후추와 비슷한 향이 있으며 약간 쓰면서도 화끈거리는 맛이 난다. 카레, 조미료, 단무지, 피클, 야채용 양념 버터, 생선요리, 달걀요리 등의 식용 천연착색제로 쓰이며 닭고기·쌀밥·돼지고기에도 넣어 조리한다.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피부를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장품으로 쓰기도 한다. 

 

  울금은 황제족(黃帝足)이라 불릴 정도로 열대지방의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장수식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일본은 오키나와산 울금을 우콘(うこん)이라 부르며 왕족만 먹는 황실 전매품으로 일반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1950년대 일본 후생성은 ‘암 극복 10년’ 프로젝트를 펼치며 오키나와가 세계 제일의 장수촌이 된 비책으로 우콘을 소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때의 재배기록이 남아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전주부 임실현에서 생산되는 것을 최상품으로 꼽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 생산량의 70%를 독차지할 정도로 진도가 울금의 메카로 부상했다. 진도군은 1993년 일본에서 들여온 울금을 대대적으로 심기 시작하여 2002년부터는 각종 가공제품을 내놓고 있다. 울금은 괴근(塊根;덩이뿌리)을 약용 식용 염색용으로 다양하게 이용한다. 

 

  울금의 주성분은 황색 색소인 커큐민(Curcumin) 1~3%, 정유 1~5%, 녹말 30~40% 등이다.  정유의 주성분은 투르메론(Turmerone), 디히드로투르메론(Dehydroturmerone)이 약 50%로 그 외에 진기베렌(zingiberene), 디알파펠란드렌, 씨네올, 알파사비넬, 보르네올 등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이 모든 병을 치료하는 한방약초로 소개할 만큼 간장해독 촉진, 담즙분비 촉진, 담도결석 제거, 강심, 이뇨, 항 출혈, 항균, 항 궤양, 혈중콜레스테롤 억제 등에 효험이 있음이 밝혀졌고, 특별히 담즙분비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간염, 특히 만성 C형간염, 담도염, 황달, 위염, 생리불순, 고혈압, 동맥경화 등에 대한 효능이 뛰어나다. 이밖에 항암, 항염, 치매 효과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울금은 간을 보호하고 숙취를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성분인 커큐민이 알코올 분해효소를 활성화시키고 담즙분비를 촉진하여 해독작용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함께 들어있는 정유 성분이 항산화 작용을 돕고 아라키돈산 대사에 관여하는 등 복합효과가 한몫을 한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미 검증된 효능으로 소화불량 개선 및 건위작용을 들 수 있는데, 독일 커미션E(독일 보험청 소속으로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허브 성분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토하는 세계적 권위의 위원회)에서는 강황(=가을울금)을 소화부전 치료제로 허용하고 있다. 또 커큐민의 작용으로 담즙분비가 활발하게 되면 체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은 그만큼 줄어들어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 레시틴 성분과 함께 섭취하면 유화 작용으로 인해 소장에서 흡수가 잘되므로 레시틴이 풍부한 콩 식품(두유, 두부 등)을 함께 섭취하면 다이어트 효과에 더 보탬이 된다.

 

  커큐민의 강점은 뭐니뭐니 해도 비타민E보다 1.5배나 강력한 항산화력에 있다. 장내에서 테트라히드로커큐민(THC)이라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 변환되어 유해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동맥경화 예방 및 피부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커큐민은 효모나 유산균 등과 함께 섭취하면 더 효율적으로 THC로 변환된다. 따라서 효모로 발효시킨 카레를 먹고 식후 디저트로 요구르트를 마신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울금의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설사와 가려움증을 꼽을 수 있다. 차고 맵고 쓰고 강한 성질 때문에 위장이 약한 사람은 그 양을 줄여 조금씩 늘려 가도록 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려움이 계속될 경우에는 녹두차를 2,3일 마시면 금세 좋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울금(鬱金)과 강황(薑黃)을 같은 식물로 이해하고 있다. 틀린 건 아니다. 학명이 Curcuma longa Radix인 울금과 Curcuma longa Rhizoma인 강황은 집채(=울금)에 들어있는 안방(=강황)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강황을 가을울금이라 하여 울금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우리 땅에서 난 것은 울금일 뿐 인도에서 가져온 강황과 혼동해 부르진 않는다. 한의학 전문서인 『본초비요(本草備要)』에서는 ‘울금은 약초 색깔이 회색에 가깝고 강황은 노란색으로 서로 다르다. 강황은 매우 뜨거운 성질을 지녀 눈이 뻑뻑하고 잘 마르는 혈이 부족한 체질에는 사용을 금한다. 울금은 맛이 똑같이 맵지만 차고 뜨거운 성질이 강황처럼 강하지 않다’고 구분하고 있다.

 

  항암효과를 볼 수 있는 커큐민의 양은 연구자마다 달라서 하루에 대략 40~200mg 정도는 섭취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시중에 판매되는 인스턴트 카레 제품의 경우 100g당 30~50mg이 함유되어 있어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양의 보충이 필요하다. 역시 걸쭉한 입맛의 엄마표 카레가 최고가 아닐까. 울금은 특유의 맛으로 인해서 먹기 힘들 수 있으나 환이나 즙, 가루로 만들어 다양한 요리에 넣거나 생강 대신 김장에 활용할 수 있고 느끼하고 비릿한 음식(생선, 고기)에 넣어 비린내를 없앨 수도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슬라이스 친 생울금 1~3g에 400~600ml의 물을 부어 끓여 우려낸 것을 보리차처럼 마시면 OK. 

 

  마침 농사 관련 동네협동조합의 조합원인 K가 울금 종자가 있다 해서 근처 농원에 심어 보았다. 사질토에서 잘 자라는 울금인지라 논 자리를 복토한 밭 자리에서 잘 자랄지 걱정이었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싹을 틔우지 않는다. 살짝 뿌리를 들춰보았더니 죽진 않았다. 한 달이 다 되어서야 고개를 내민 울금 줄기는 9월 들어 넓은 잎사귀로 힘찬 기세를 뽐내고 있다. 울금을 보며 느림의 미학을 깨닫는다. 

 

▲ 신완섭 K-GeoFood Academy 소장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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