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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 10주기 추모 묘소 참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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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섭 기자
기사입력 2020-11-25

11월 24일 화요일, 리영희 선생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멀리 광주 망월동을 찾았다. 원래 실제 기일이 12월 5일이어서 이날 버스를 대절하여 시민들과 함께하는 참배행사를 치르려 했으나 코로나19 2단계 발동으로 행사를 급히 취소하고 관계자 여러분만의 소박한 참배로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참배객은 군포시민신문 이진복 발행인, 김정대 편집장, 신완섭 편집위원, 유성인 기자, 고희정 기자 다섯 명으로, 오전 10시 12인승 스타렉스에 몸을 실었다. 이날 추모 행사를 위해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열린사회연구소, 군포시민시민응원단 등이 후원해 주셨다. 

 

묘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쯤, 허기를 감추지 못해 근처 맛 집으로 소문난 ‘서진주한식당’을 찾아가 늦은 점심식사를 하였다. 홍어찜과 떡갈비, 돼지수육, 들깨찌개 등 남도의 풍미가 느껴지는 정갈한 음식과 반주로 마신 무등산 막걸리 한 잔이 피로를 싹 가시게 한다. 

 

서둘러 5.18민주묘역으로 이동했다. 여기저기 공사가 벌어져 찾아가는 길이 다소 어수선했으나 5.18 민중항쟁추모탑 앞에서 분향한 후 추모탑 위로 잠시 올라 바로 왼편에 ‘리영희의 묘’ 비석이 눈에 띈다. 준비해간 전과 과일을 묘석에 올려놓고 이진복 발행인을 필두로 차례차례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술을 따르는데, 10년 만에 뵙는 송구함과 선생의 기운이 느껴져 손이 떨리고 가슴도 두근거렸다. 

 

 리영희 선생 10주기 추모 방문 (사진=군포시민신문)   @ 군포시민신문

 

간단히 제를 끝낸 뒤 묘소 뒤편에서 준비해간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맑게 갠 파란 하늘이 선생의 기개처럼 무척 청량하다. 문득 비석 뒷면을 쳐다보니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힌 겨레의 스승, 여기에 잠들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평생 이성의 눈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우상을 타파하셨던 곧은 정신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겨본다. 바짝 말라버린 묘상의 풀을 다듬고 비석을 매만져 보는 것으로 참배행사를 끝냈다.

 

묘역을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 선생께서 왜 5.18민주묘역에 묻히셨는지 궁금해하길래, 내가 나서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한양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야. 5월 17일 밤 11시 반경 중앙정보부 체포대가 선생의 집을 덮쳐 다짜고짜 선생을 끌고 갔지. 죄목은 ‘광주소요사태 배후조종자’. 중앙정보부가 김대중과의 관계를 엮어 두 달간의 신문을 했지만 아무런 혐의도 찾을 수 없어 석방하면서도, 한양대 교수직과 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직을 박탈시켰어. 이 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망월동과 연을 맺었던 거야”

 

각자 이날의 감동을 가슴에 묻고 군포로 올라오는 길에 충남 보령 이진복 발행인의 부모님 묘소도 참배했다. 얼마 전 아버님 기일에 다녀가지 못한 갑작스러운 후속 조치였으나 일행은 해거름에 술잔을 올리고 또 다른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래저래 오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일이 되었다. 죽어도 영원히 사는 세상을 꿈꾸며 이웃 마을 광천으로 달려갔다. 버스터미널 인근 갈비탕맛집 ‘유진식당’에서 속을 데운 뒤 근처 시장 안 행복젓갈집‘에서 낙지젓갈과 광천김 한 통씩을 사 들고 귀갓길에 올랐다.

 

  태껏 뵙지 못해 먼 길을 왔습니다

  대 반 설렘 반 무거웠던 발걸음

  너른 묘역 가운데 당신 혼자 반깁니다

 

  들어도 달 지고 해 뜬 지 어언 10년

  녘의 억새들이 넘어지고 일어서듯

  가온 우리 가슴에 ‘희망’을 심어줍니다

 

 리영희 선생님 묘비 뒷면 (사진= 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올라오는 차량에서 참배의 감동을 비석 뒷면에 새겨진 글귀를 되새기며 한 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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